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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문화유산답사

정의고을

by 고니62 2017. 10. 10.

정의고을(2017.10.8.일)


길어도 너무 긴 연휴

성읍민속마을을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 '정의고을'로

답사간다는 소식에 서둘러 집을 나섰다.


[정의현성 남문과 돌하르방]


성읍마을은 성벽으로 둘러싸인 읍성으로

왜구 방어와 정의현 보호를 목적으로 축성했다.

정의현 돌하르방은 12기로

남문 웅성 밖에 돌하르방이 좌우에 각 2기씩 4기가 세워져 있고

동문과 서문에 각각 4기씩 세워져 있다.


'정의고을, 정의골' 이라 불리는 성읍리

약 500년 동안 정의현의 현청 소재지였던 유서 깊은 마을이다.

성읍민속마을은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 일대로

조선조 태종16년(1416년) 성산읍 고성리에 설치되었던 정의현청이

조선조 세종 5년(1423년) 이 곳으로 옮겨진 이래

정의현의 도읍지로 번성하였던 성읍은 평범한 농촌마을의 길로 접어들고

정의고을이었던 성읍은 표선면 면소재지로 전락되었지만

역사적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중요민속자료 188호 국가지정문화재로 승격되었다.


[정의현 객사]


정의현의 객사 건물의 주 기능은

지방관이 임금에게 초하루와 보름에 배례를 올리는 기능과

중앙관리가 내려오면 이 곳을 거처로 사용하는 숙소의 기능이다.

객사 건물은 이처럼 영빈관의 기능을 갖고 있으면서도

경로잔치나 연회를 베푸는 곳으로도 사용하였다.


오메기술, 고소리술 기능보유자(무형문화재 제3호) 

김을정님의 '술 다끄는 집'

약속시간에 맞춰 제일 먼저 찾아가기로 했다.



[오메기술 전수조교 강경순]


오메기술은 선조들이 좁쌀로 빚은 농주인

좁쌀막걸리를 일컫는 말로 좁쌀을 빚어 술떡을 만들고

누룩으로 발효하는 제주의 전통 민속주다.

옛 술맛을 보존 및 발전시키기 위해

전통 방식으로 술 만드는 작업을 계속 해오고 있다.


'오메기'란 뜻은

떡을 동그랗게 만들어서 가운데 부분을 오목 들어가게 만들거나

구멍을 뚫어 만든 떡모양을 말하며 제주 고유의 말이다.

술을 하는데 쓰는 떡은 오메기술떡이고

팥고물을 입힌 떡은 오메기떡이다.



술 제조과정은 '정성'이라고

어머님의 뜻을 이어받아 옛맛을 그대로 계승하는 강경순님

'멀리서 찾아와줘서 고맙다'

고 반가우면서도 아쉬운 듯 배웅해 주신다.



가을 향기가 물씬 풍기는 정의고을~

감이 익어가는 돌담 너머로 정의현 객사가 보인다.



메밀꽃과 돌담, 그리고 초가집...

시골풍경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소박하고 정겨움에 자연스레 발길이 멈춰진다.


[성읍리 쳔년 팽나무]


제주 성읍리 느티나무와 팽나무 군은

천연기념물 제161호로 지정되었다.

느릅나무과에 속하는 낙엽이 지는 큰 키 나무로

느티나무는 제주어로 '굴무기낭' 이라 하여

목재가 단단하고 아름다워서 예로부터 건축재, 가구재로 많이 쓰였고

팽나무는 제주어로 '폭낭'이라고 하는데 마을마다 그늘나무로 많이 심어졌다.



[근민헌]


근민헌은 정의현감이 집무하던 청사로 

현재의 군청과 같은 건물이다.

처음 정의현 치소(治所)는 성산면 고성리에 두었으나

왜구의 침입이 잦아 1423년(세종 5년)에 현 위치로 옮기고 석성을 축조하였다.



[송악]


[안할망당(관청할망)]


정의고을(정의현청 소재지)의

대표적인 무속신앙의 기도처로 고을의 관청안에 있다하여

'관청할망'으로 불리워지고 있다.

노거수 팽나무를 신목으로 하여 기왓장 위에

비녀, 옥구슬 등을 놓고 신앙의 대상으로 삼았고

주민들의 안녕과 신수를 기원하는 곳으로 이용해 왔었다.


[돌담 안으로 하얀 메밀꽃이 아름다운 '안할망당' 올레]




[고창환 고택]


국가민속문화재 제70호로 지정

1900년도 초에 정의골의 여인숙으로 사용되던 고택으로

지금도 마을 주민들은 여관집이라 불린다.

이문간이나 정낭이 없이 바로 출입할 수 있다.

뒷 우영밭에는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었는데

특히 머귀나무가 인상적이다.


정의향교로 향하는 길에

북과 꽹과리 소리에 잠시 신명나게 놀다간다.



정의향교는

표선면 성읍리 정의현성 동문 안쪽에 위치하고

제주도 유형문화재 제5호로 지정 보호하고 있다.


[동재]


 

[정의향교 대성전 전패]


[대성전]


[퇴출문]


[명륜당과 서재]


마당 한 가운데 아름드리 은행나무가 서 있다.

열매가 열리지 않는 수나무라 은행 열매로 인한 악취는 없지만

가을 노랗게 물든 은행잎이 수북이 쌓이면

비를 들고 은행잎을 쓰는 일이 하루일과가 된다.


[서문]


[정의골 돌하르방]


돌하르방은 1970년대에 붙여진 이름으로

본래는 우석목, 무석목, 벅수머리 등으로 불러졌다.

정의현성 서문입구에 세워진 돌하르방의 높이는 120~152cm로서 각기 다르다.

이 석상은 동문 앞 좌우에 각각 2기씩 세워져

주민들의 안전과 건강을 지켜주며 기원하는 수호신적, 주술종교적 의미와

도읍지의 위치를 정확히 알려주는 경계 금표적 기능을 하여

육지의 장승과 같은 역할을 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노더리방죽]


정의마을 사랑방이었던 노더리방죽은

직사각형 모양를 하고 있고 돌담을 쌓아 물을 고이게 했다.

물양귀비가 고운자태로 활짝 피어 길손들에게

잠시 쉬어가라 웃어준다.


가을꽃들은 정의골 마당에도, 길가에도, 돌담 위로도

한낮 더위에 활짝 피어 찾아오는 길손들을 반갑게 맞아준다.


[한련초]


[털별꽃아재비]


[고슴도치풀]


[나도공단풀]


[선풀솜나물]


[종지나물(미국제비꽃)]


[콩짜개덩굴]


[며느리배꼽]


[여우구슬]


[꽃범의꼬리]


[아게라텀(멕시코엉겅퀴)]


[꿩의비름]


[원님물통(남문물통)]


원형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는 '원님물통'은

원님이 마시던 물통이라는 데서 붙여진 이름으로

용출수량은 많지 않았지만 성읍 인근 물중에서는 가장 깨끗한 물이었다고 한다.

가뭄이 심해 물이 없을 때는 주민들에게 비상급수 시설이기도 했다.


[성읍 고평오 고택]


중요민속자료 제69호로 지정

고평오 고택은 현 거주인 고평오씨의 증조부가 건립한 초가로

안거리(안채)와 밖거리(바깥채), 목거리(헛간채) 및 대문간이 갖추어진 집이다.

안거리는 제주도의 전형적인 작은 구들없는 3칸집과

밖거리는 정의현에 근무하던 관원들이 하숙을 하던 곳이다.


[남문 앞 몰방애]



[성읍교회 종탑]


대한제국 시대에 건립된 성읍교회는

이기풍 선교사가 세운 7개의 교회(대한예수교 장로회 소속) 중 하나로

제주도에서 2번째로 세워진 유서가 깊은 교회다.


[동문]


[성읍 한봉일 고택]


중요민속자료 제71호로 지정

한봉일 고택은 19세기 중엽에 지은 초가로

안거리(안채), 밖거리(바깥채) 및 대문간으로 구성되었다.

안거리는 작은방이 있는 한라산 남쪽 지역의 전형적인 특색을 나타낸다.

대문간은 좁은 골목을 만들어 대문을 대신하는 올레를 만들었다.


[페허가 된 집]




[남문]


정의성문을 지키던 수문장 돌하르방 

어머니 품처럼 포근한 마음의 고향처럼 다가오는 영주산

돌담 안으로 하얀꽃 세상을 만들어가는 메밀꽃 향기

정의현의 도읍지로 번성하였던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정의골

성벽 위에서는 성읍민속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