덧없는 사랑 '꿩의바람꽃'
겨울을 보내고 봄을 부르는 바람
음력 2월 초하루, 바람의 신 영등할망이 계절풍을 몰고 오신다.
기습 추위로 한라산에 상고대가 피어나고
갯가에는 해산물의 씨를, 밭에는 곡식의 씨를 뿌리고
숲 속에는 출렁이는 봄바람에 바람꽃을 뿌리며
제주 곳곳을 돌아다니신다.
자연이 그려내는 혼이 담긴 예술품
열 번 봐도 가슴이 탁 트이는 눈을 뗄 수 없는 아침 풍광
바다 쪽으로 희미하게 드러난 비양도와 가까이는 이웃한 바리메와 족은바리메의 다정한 모습
멀리 산방산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서부지역 오름군락의 파노라마
부드러운 능선의 한라산과 대평원이 눈 앞에 펼쳐진다.
무한을 느끼며 서 있는 대지의 나무들,
일찍 세상 밖으로 나온 잎은
일렁이는 바람에 봄의 화려함 속으로 걸어가고
발아래 깨어나는 어린 생명, 봄처녀 '산자고'가 봄을 노래한다.
수직에 가까운 계단을 내려와 숲길로 접어들자
찬바람을 밀어내며 봄빛이 대지를 적시고 향기 품은 바람은
시간이 멈춘 듯 숨을 멎게 한다.
순간, 눈에 들어오는 연분홍 꽃봉오리
하얀 치맛자락을 살랑거리며 차가운 바닥을 수놓았던 변산아씨는
흔적만 남기고 봄바람 타고 떠나버렸지만
그 자리엔 햇살이 퍼지듯 하얀 속살을 드러낸 '꿩의바람꽃'
꿩의바람꽃은
미나리아재비과의 여러해살이풀로
높은 산 낙엽 수림대 습기가 많은 산기슭이나 숲 가장자리에서 자란다.
돌돌 말려있는 잎 모습이 꿩의 발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꿩의바람꽃'
꿩의 울음소리에 놀라 꽃을 피운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줄기는 가지가 갈라지지 않고 꽃대는 높이가 15~20cm이고 긴 털이 보인다.
긴 타원형의 소엽은 3갈래로 깊게 갈라지고
끝이 둔하고 윗부분에 불규칙하고 둔한 톱니가 있다.
보통 연한 녹색이지만 붉은색을 띠는 경우도 있다.
꽃은 3월~4월 줄기 끝에 1개씩 달리는데 하얀색이다.
암술과 수술은 많지만 꽃잎은 없다.
긴타원형의 꽃잎처럼 보이는 꽃받침은 하얀색이지만
겉은 연한 자줏빛이 돌고 8~13장으로
바람꽃 속 식물 가운데 꽃잎 모양의 꽃받침수가 가장 많다.
5~6월 수과가 달려 익는다.
빗장이 활짝 열린 봄
상잣질로 들어서자 세상 밖으로 쏟아져 나오는 새 생명들
나무 잎새는 아침마다 색을 달리하고
봄을 부르는 생명의 속삭임은 마음까지도 흔들린다.
차오른 달만큼이나 추위를 견뎌야 봄이 온다는 걸 알았을까?
언 땅을 뚫고 노란 얼굴을 내밀었던 세복수초는 무성하게 자라 주위를 끌지 못하고
가장 아름다운 행복을 상징한다는 '바람꽃'
깨어나는 시간, 봄을 부르는 변산바람꽃을 시작으로
한라산 '세바람꽃'까지 꽃이 피는 순서대로 담았다.
여전히 봄이면 피어나는 봄을 예찬하는 바람꽃
솜털에 싸인 채 햇살에 반짝이는 덧없는 사랑 '꿩의바람꽃'
가냘프지만 아직은 차가운 봄바람에 결코 꺾이지 않는 강인한 모습
만개한 자연이 주는 힘은 늘 겸손하게 한다.
이 글은 제주투데이 '길에서 만난 들꽃이야기'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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