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안올레 2코스(2025.1.18. 토)
꼬닥꼬닥 걸어서 떠나는 원도심 도보여행
걸어서 만날 수 있는 제주의 역사와 문화, 자연환경을 잇는 '성안올레'
제주시 원도심 지역은 견고한 성으로 둘러싸여 있어 예로부터 '성안'으로 불렀는데
'성(城)의 안쪽'이란 뜻으로 원도심 일대를 부르는 순수 옛 명칭이다.
'성안올레'는 제주시 원도심을 걷는 올레길의 의미를 담았다.
제주사랑방 성안올레쉼터 꼬닥꼬닥은
성안올레 코스 안내와 정보 제공 등 방문객을 위한 휴식공간이다.
꼬닥꼬닥은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라는 뜻을 지닌 제주어로
출발 전 잠시 둘러보는 것도 좋겠다.
성안올레는 제주 원도심 올레길로
꼬닥꼬닥 걷는 올레길이라는 의미를 담아 2022년에 첫 공개를 하였다.
원도심 '성안올레'는 총 17.5km, 3개의 도보코스로
1코스(6km, 2시간)와 2코스(6km, 2시간)는 2022년과 2023년 개장,
3코스(5.5km, 1.5시간)는 2024년 11월 전면 개장한
제주시 도심 속 자원을 테마로 역사와 문화, 그리고 자연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함께 느낄 수 있는
모든 코스의 시작과 끝을 산지천(성안올레 쉼터 꼬닥꼬닥)
원점 회귀형 코스로 원도심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제주여성가족연구원 건물 앞에
성안올레 시작과 끝을 알리는 간세와 표지석이 있다.
표지석에는 3개의 성안올레 코스 노선을 알리는 내용이 표시되어 있다.
성안올레 표식은 기본색이 노랑이고,
리본도 노랑과 회색으로 길을 걷는 중간중간에 만날 수 있다.
역사와 문화를 잇는 성안올레 2코스는
산지천(성안올레 쉼터 꼬닥꼬닥)~W360~산짓물 광장~
탑동광장~용화사 서자복~용연구름다리~무근성길~관덕정~오현단~제이각~
제주칠성로상점가~산지천으로 원점회귀한다.
중간 스탬프는 용연구름다리와 관덕정에서 만날 수 있다.
성안올레 즐기기
성안올레를 걷다 보면 건물 벽이나 담, 전신주, 나무 등에
화살표 표지판과 리본을 확인하며 걸으면 길 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채로운 주변 풍광, 원도심에 숨어있는 흥미로운 이야깃거리, 색다른 경험 등
성안올레 표지를 따라 놀멍 쉬멍 보멍 여유롭게 즐기며 걸어보자.
예전 제주성 북수구로 홍문이 있던 터다.
홍수가 일어날 때마다 무너져내려 문루를 없애고 홍문만 세웠지만
홍문 역시 1927년 대홍수로 무너져 지금은 그 흔적이 남아있다.
사철 맑은 물이 솟아나 흐르는 산지천 빨래터는
예부터 건입포 주민들은 물론 제주성안 사람들에게 삶의 애환이 깃든 곳이다.
먹는 물은 물론 여름에는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목욕하러 즐겨 찾았다.
특히 여인들이 길게 늘어서 빨래하는 모습은
이곳에서만 볼 수 있었던 풍경이다.
친구들과 어울렸던 산짓물은 여름에도 너무 차가워서
입술이 파래지도록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놀던 모습은 추억이 되어버렸다.
산지천 상류구간은 전형적인 제주하천의 형태인 건천이나
하류에 이르러 가라쿳물, 산지물, 지장샘 등의 용출수가 풍부하여
식수로도 사용되었으며 멱을 감거나 빨래를 하는 등 이 지역 주민에게는
생명의 원천이기도 하였지만 잦은 홍수로 냇물이 범람하여
많은 피해를 안겨준 공포의 하천이기도 하였다.
60년대 후반에 복개된 산지천은 90년대 들어 철거되면서
옛 모습의 정취를 살리게 되었고
생태하천으로 복원되면서 도심생태공간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당시 건입포는 육지부와 교류가 활발했던 제주 관문으로써 산짓물 광장 주변으로
육지를 오가는 여행객을 위해 세워졌던 송천여관 터(일제 강점기 때 규모가 큰 일본식 여관),
등피·밤부리(등잔을 이루는 기구) 공장 터, 담배·소금 ·성냥 배급소 터 등
근대식 물자를 반입, 공급하는 제주의 주요 기점지역이다.
산지천을 지나 탑동광장으로 가는 길
부두에서 나는 특유의 기름냄새, 하늘을 나는 괭이갈매기의 날갯짓,
진실을 감추지 않는 잔잔한 바다는 오늘도 어김없이 흘러간다.
제주항의 전신인 산지항 공사가 시작된 곳이다.
산지포는 1928년부터 산지축항공사가 시작되며 근대식 항구로 변모하기 시작한다.
서부두 방파제를 위해 동부두 동쪽의 절벽~사라봉 기슭이 깎여져 나가고,
이때 제주성도 허물어 성담을 축항공사에 투입했다.
그 후 계속 공사가 진행되며 오늘의 제주항이 건설되었다.
누구에게나 꿈과 희망, 그리고 사랑을 주었던 방파제
예전의 모습과 많이 달라졌지만 해질 무렵이면 방파제 끝까지 걷던 추억
옛 기억을 떠올리며 친구들과 수다 떨며 이 길을 다시 걷고 싶어진다.
3대 3 농구 명예의 전당 '제주 탑동광장'
3대 3 농구의 2020년도 도쿄올림픽 정식 채택을 기념하고,
환상적인 바다를 배경으로 농구 경기를 즐길 수 있는 전 세계 유일한 곳이다.
탁 트인 푸른 바다를 보며 제법 긴 거리의 테마거리를 걷다 보니
사라봉은 점점 멀어지고, 손에 잡힐 듯 아주 낮게 날아가는 비행기
지나가는 관광객인 듯 이색적인 풍광에 연신 셔터를 눌러댄다.
예로부터 물이 좋으면 사람이 모여 와 살았다.
한두기는 용담동의 발상지이며 한내(한천)의 머리란 뜻이다.
동네가 마치 큰 항아리와 같이 생겼다고 해서 '한독'이라고 하다가 '한두기'라 불렀다.
용연을 중심으로 동쪽을 동한두기, 서쪽을 서한두기라 부른다.
제주의 복신미륵(福神彌勒)은
사람의 수명과 행복을 관장하며 숭배되는 미륵 한 쌍으로
조선시대에 쌓은 제주성을 중심으로
동쪽에 있는 것은 동자복(東資福), 서쪽에 있는 것은 서자복(西資福)이라고 한다.
해륜사 절 경내에 위치한 서자복은
현무암으로 만들어진 입상으로 몸에는 예복을 걸치고
두 손을 가슴에 가볍게 얹었으며 패랭이 모양의 벙거지 모자를 쓴 모습이다.
서자복은 여성으로 보고 있고, 정성을 들이면 자식을 얻을 수 있다고 전해진다.
서자복은 동쪽에 마주하고 있는 동자복과 함께
고려시대에 불교신앙과 민간신앙이 결합되어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용연 구름다리는 동한두기와 서한두기를 잇는 다리로
다소 위험하게 출렁이던 작은 구름다리를 철거하고 새로 만든 구름다리이다.
용연은 제주시의 중심부를 남북으로 흐르는 한천이
바다와 만나는 자리에 있는 작은 연못으로
용이 놀던 자리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고 가뭄이 들어도 물이 마르지 않는다.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물결빛이 아름답고 울창한 숲과 조화를 이룬 절벽과
물속 바위들 모습이 수려하고 마애명이 절벽에 새겨져 있다.
용연이 있는 한천의 하구는 용암이 두껍게 흐르다가 굳은 것이
오랜 세월 동안 침식을 겪으며 깊은 계곡이 되었다.
양쪽 기슭에는 용암이 식으면서 만들어진 주상절리가 잘 발달되었다.
예로부터 용연 주변은 경치가 아름다워 영주 12경의 '용연야범'으로 유명하다.
(용연야범은 여름철 달밤에 용연에서 뱃놀이하는 것을 말한다)
가뭄이 들면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내기도 하였다.
한라산 백록담에서 발원한 한천이
바다로 흘러드는 이 냇골을 예로부터 용담 또는 용연이라 불렀다.
병풍을 두른 듯한 양쪽 벼랑 위에는 여러 종류의 나무가 무성하고,
절벽의 돌무늬와 이끼, 아래로는 파도소리가 운치를 더한다.
이처럼 산과 물의 경치가 하나로 어우러져
지금까지도 옛 제주성 주변 경관 중 제일가는 곳으로 꼽고 있다.
고시락당은 한두기 마을 본향당으로
용연 다리가 있는 곳에서 100여 m 떨어진 용연 냇가에 있다.
이 당의 본향당신은 해신이기도 해서
일만의 어부와 일만의 잠수부를 차지하여 어로의 풍요를 가져다준다.
때문에 이 당에 다니는 사람들이 바닷가에서
용왕제를 하고 제를 드린 후에 이곳에 와서 바다의 안녕을 빈다.
부러리마을은 제주 향교 북쪽, 동서로 난 옛날의 '구한질'을
말하는 것으로 부러리(동네)를 지나는 길이라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그림전시회가 열린 벽화골목
차가 다닐 수 없을 정도로 좁은 골목은 옛 정서가 그대로 남아있어
걷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된다.
무근성(묵은성)은 옛 탐라국시대때 성담을 쌓았던
묵은성이 있던 마을로 제주읍성이 새로 생기면서 없어진 데서 유래되었다.
병문천과 해자길, 구린질 사이 일대 삼각형 형태의 마을로
관아에 근무하는 관리(조관)들과 부호들이 많이 살았던 동네다.
제주목 관아의 서쪽 울타리를 끼고돌면 과거 여관, 요정 및 상가가 발달하였으며,
전쟁 이후에는 마을 유지 강민호가
피난민들에게 자신의 토지를 내 형성된 피난민촌이 있었다.
그리고 아침밥을 짓기 위해 아낙네들이 병문천
배고픈 다리를 건너 선반물이란 용천수를 길어오던 애환을 담은 이야기가 있다.
제주목 관아는 제주의 역사가 응축된 현장으로
조선시대 제주목 통치의 중심지이다.
관덕정을 포함하는 주변 일대에 분포해 있으며 이미 탐라국시대부터
성주청 등 주요 관아가 설치되어 있었다.
제주목 관아는 정치와 행정, 문화를 아우르는 복합공간으로서 기능은 물론
경노, 입신양명의 실현 등 민관의 소통이 이뤄지는
열린 광장으로서도 소중한 가치를 지닌다.
옹중석, 우석목, 벅수머리 등으로 불리는 돌하르방은
제주목, 정의현, 대정현의 성문 입구에 세워졌던 석상이다.
제주읍성 동·서·남 세 개의 문 밖에 각 8기씩 24기와
정의현성, 대정현성 세 개의 문 밖에 각 4기씩 12기가 설치되어 모두 48기가 세워졌다고 한다.
현재는 관덕정, 삼성혈, 제주시청, 제주대학교 박물관 등 제주시내에 21기,
서귀포시 표선읍 성읍리에 12기,
서귀포시 대정읍 인성리, 안성리, 보성리에 12기 등 모두 45기가 남아 있다.
다른 지역의 성문이나 사찰 앞에 설치한 장승과 같이
수호신의 역할과 경계 금표적 기능을 지녔던 것으로 보인다.
관덕정은 활쏘기와 무예를 연습하는 군사 훈련장으로
세종 30년(1448) 제주목 관아 앞에 지어졌다.
현재 제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로 한국 전통건축의 정수를 보여준다.
향사당은 도지정유형문화재 제6호로
봄, 가을에 온 고을 사람들이 모여 활쏘기와 잔치를 베풀며
당면과제나 민심의 동향에 대하여 논하던 곳이다.
담벼락에는 길고양이가 사진 속 모델이 되어준다.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34호로 지정된 녹나무는
구) 제주대학병원 경내에 자리하고 있다.
시내 중심가에 있으면서 오랫동안 아무런 대가 없이 녹음과 그늘을 만들어주는 녹나무는
피해 없이 잘 보존되어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한다.
녹나무는 녹나무과의 상록활엽교목으로 제주도, 일본, 중국 등에 분포한다.
어린가지는 황록색을 띠고 윤기가 흐르고,
어린잎은 붉은색이 도는데 나무전체가 특이한 붉은빛으로 보인다.
긴타원형의 잎은 어긋나고 윤기가 나고
콩알 크기 열매는 10월이 되면 흑자색으로 익는다.
아열대의 대표적인 나무로 여름의 녹음과 굵고 키 큰 나무로 알려졌다.
나무 전체에서 향기가 나 벌레가 먹지 않고
썩지 않아 가구재나 건축재로 쓰인다.
여기서, 잠깐!
제주도의 상징물을 아시나요.
제주도의 꽃은 참꽃나무, 나무는 녹나무, 새는 제주큰오색딱다구리,
캐릭터는 돌이와 소리(돌하르방과 해녀)입니다.
![](https://blog.kakaocdn.net/dn/d3XQQt/btsLRiuxwZj/JOoKgtkubcWXsf0eKuEm01/img.jpg)
병풍바위에 새겨놓은 '증주벽립(曾朱璧立)'이라는 마애명이 보인다.
오현의 한 사람인 송시열 선생을 기리는 뜻이다.
귤림서원은
조선시대 제주에 유배되었거나 방어사로 부임했던 5현인
충암 김정, 규암 송인수, 동계 정온, 청음 김상헌, 우암 송시열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며 후학을 양성하던 유교 교육기관이었다.
오현단은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1호로 지정된 곳으로
조선시대 제주에 유배되었거나 목사 등의 관인으로 내도 하여
민폐 제거, 문화발전에 공헌한 5인을 기리기 위해 마련한 제단이다.
귤림추색은 영주십경의 하나로 알려진 옛터로
제주시 오현단 주변 관밀감과원에
노랗게 황금빛으로 익는 감귤이 온 천지가 황금물결로 장관을 이루었다.
영주십경(제주의 아름다운 10가지 경치)은
조선조 매계 이한우(1818~1881)가 선정하였다.
제주성지는 옛 제주 성터로
제주특별자치도 지정 기념물 제3호이다.
제주성은 제주시내의 중심지를 빙 둘러 축조되었고,
언제 처음 쌓였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이곳에 남아 있는 성벽은 조상들의 축성법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제이각은 왜적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제주읍성 남문 동측 치성 위에 세웠다.
가파르고 높은 언덕에 세워져 성안은 물론 멀리 해안까지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평화로운 시대에는 관리와 선비들이 경승을 감상하기 위해 즐겨 찾았던 곳이기도 하다.
성안올레 2코스는 동문시장을 지나 제주 패션의 중심 '칠성로'로 안내한다.
예전의 모습과 많이 달라졌지만 제주의 명동으로 불렸던 칠성통은
패션 1번지, 문화와 낭만의 거리, 예술인의 거리다.
칠성통과 관덕정으로 이어지는 거리는
선박, 해운업체, 극장, 귀금속, 시계, 식당, 문구, 빵집 등 이름난 상점들이 즐비하였지만
지금은 많이 사라져 원도심의 부활을 꿈꿔 본다.
칠성로는 '칠성단(七星壇)이 있다' 하여 칠성골로 불렸다.
삼성이 처음 나왔을 때 삼도를 나누어 차지하였는데
제주성내 7곳에 북두칠성 형태로 제단을 쌓아
삼을나의 추장이 부족의 번영과 나라의 융성을 기원했던 칠성단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칠성대는 탐라시대부터 전해 내려온 최고의 유적으로 주성안에 있고,
탐라사회의 결속과 번영을 기원하기 위한 문화상징이다.
제주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제주의 중심
숨겨진 제주여행지를 혼자 느릿느릿 걸어도 좋은 '성안올레'
원도심의 매력에 푹 빠지게 한 성안올레 2코스는
제주도 역사의 흔적, 문화, 항구, 그리고 자연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어둠이 내리는 시간, 건물에 걸린 지는 해는 하루의 고단함을 말끔하게 씻어준다.
이 글은 제주투데이 '길에서 만난 들꽃이야기'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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