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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니의 일상

초하루 모둠벌초

by 고니62 2017. 9. 25.

초하루 모둠벌초(2017.9.24.일)


제주에는 '초하루 벌초'라고 해서

음력 8월 1일이 되면 친척들이 모여 문중벌초를 하는 풍습이 있다.

조상님들을 모신 묘에 여름동안 무성하게 자란 풀들은

한가위에 앞서 자손들이 조상의 묘를 깨끗이 벌초를 하는 것이 관습이 되었다.

조상들을 잘 섬겨야 자손들이 복을 받고

조상들의 묘를 방치하면 불효라는 생각을 하면서...



해안동 가족공동묘지로 가는 길은 한산하다.

꽉꽉 막히던 출렁이는 벌초행렬은

아직 이른 시간이기도 하지만 팔월 초하루 전에 벌초를 끝냈다.

올 여름 유난히 덥고 가물었던 날씨에

길가에 무성하게 자라던 잡초들은 난쟁이가 되었고

흐린 날씨는 벌초하기에 더없이 좋은 날이다.




명당 중의 명당 '조상님들의 묘'

남쪽으로 희미하게 보이는 한라산 능선

북쪽으로는 끝없이 펼쳐지는 수평선

도두봉을 중심으로 제주시내가 한 눈에 들어온다.




풀벌레들의 천국 풀숲은

어른 키 만큼 자란 풀더미 속에 묘지와 비석은 숨어버렸고

인간에게 골칫덩어리 환삼덩굴과 칡은 영역을 표시하며 산담을 에워싸고

배롱나무 가지에는 떠나버린 새들의 보금자리가 덩그러니 남아 있고

시간을 거꾸로 사는 고사리들은 묘 주위로 뿌리를 깊숙이 내리고

묘 위에는 종소리가 들릴 듯 가을하늘과 잘 어울리는

키다리 '층층잔대'가 제일 먼저 반긴다.


[층층잔대]


[닭의장풀]


[환삼덩굴]


[인동덩굴]


[칡]


[며느리밑씻개]


[무릇]


[사위질빵]


[고삼(도둑놈의지팡이)]


[댕댕이덩굴]



[배롱나무에 새집을 지었다.]



[고사리]


조상과 후손들의 정다운 이야기가 시작된다.








벌초하는 동안은 묘 위로 올라가도 기특하다고 웃어주고

비석 구석구석 잡초를 낫으로 베어내며

"팔월 멩질(추석) 먹으러 갈려면 벌초를 해야허는거여~

그래야 한해도 별 탈 없이 지나간다."




무성하게 자란 잡초들을

예초기와 낫으로 베어내고 긁갱이로 긁어 한 곳에 모아두면

모다들엉(모여서, 같이) 산담 귀퉁이로 날라간다.

깔끔하게 정리된 가족공동묘지

정성스레 준비해 온 음식으로 묘제까지 지내면

진짜 1년이 후딱 지나가버린다.



제주만의 독특한 문화 '모둠 벌초'

시대가 바뀌면서 제주의 장묘문화도 변해가고

제주의 벌초문화였던 '벌초방학'이 사라진지 오래되었지만

그래도 잊지말아야 할 것은

고향과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며 자신의 뿌리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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