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꽃 마중하는 '거친오름'(2025.3.19. 수)
어느 해보다 자주 들려오는 산간 눈 소식
큰 기대 없이 노루생태관찰원으로 향하는 동안 도로에 쌓인 눈
봄꽃마중 가는 길이라 혹시나 하는 바람은 설렘으로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2007년 8월에 문을 연 노루생태관찰원은
오름에서 자유롭게 뛰노는 노루를 관찰할 수 있는 관찰로와
가까이에서 노루를 접할 수 있는 상시관찰원, 전시관 등이 갖추어져 있다.
추운 날씨 탓에 노루들은 한참을 웅크려 앉아 미동도 없다.
산세가 거칠고 험한 기생화산 '거친오름'은
제주시 봉개동에 위치한
높이 618.5m, 둘레 3,321m 규모의 기생화산이다.
산채가 크고 산세가 험해 전체적인 모습이 거칠어 보이는 데서 유래되었다.
동쪽 봉우리와 서쪽 봉우리 두 봉우리로 이루어졌고 동쪽 봉우리가 주봉이다.
크고 작은 여러 줄기의 산등성이가 사방으로 뻗어 내리고
산등성이 사이사이에는 깊은 골이 파여 있어 전체적인 산세가 매우 복잡한 편이다.
험한 숲이 어수선하고 우거져 거칠게 보인다는 '거친오름'은
오름 북쪽 비탈면에는 말굽 형태의 분화구가 있고
비탈면 전체에는 낙엽수를 주종으로 해서 해송과 상록활엽수가
드문드문 섞인 울창한 자연림이 형성되어 있다.
봄이 문을 여는 심술부리는 3월,
구름을 밀어내고 뺨에 닿는 봄햇살이 차갑지만
걸을 때마다 뽀드득뽀드득 눈 밟는 소리는 정겹기만 하다.
정상에 오르면 동서남북 사방이 탁 트인 모습에 가슴이 후련해진다.
바농오름~족은지그리오름~큰지그리오름~민오름~절물오름 등
한라산 치맛자락을 타고 내려온 겹겹이 이어지는 오름군락
한라산은 구름에 가렸지만 감춰두었던 아름다운 명장면을 연출한다.
몇 발짝 걸었을 뿐인데 눈밭 뚫고 고개 내미는 얼음새꽃
변산바람꽃과 함께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전령사 '세복수초'
능선마다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하는
초록 치마에 샛노란 저고리로 갈아입은 세복수초가 꽃길을 만들었다.
심술부리는 꽃시샘 동장군
강추위가 지속되면서 봄꽃들은 보름 이상 개화 시기가 늦어졌다.
봄의 시작을 알리는 전령사 '세복수초'는
제주에서 자생하는 꽃이 필 때 잎이 가늘고 길게 갈라져 나온다.
눈 속에서도 꽃이 핀다고 해서 '얼음새꽃', '설연화'라고 불린다.
햇빛이 스며들고 바람이 길을 만든 곳에는
언 땅을 뚫고 나왔던 세복수초는 얼음새꽃이 되어 희망을 불어넣는다.
세월이 느껴지는 아직은 앙상한 숲길은 걷기만 해도 기분 좋아진다.
작은 돌 틈에 스며든 하얀 봄
하얀 털옷을 입고 기지개 켜는 '새끼노루귀'
봄비와 나뭇잎을 이불 삼아 보송보송 솜털을 단 모습이 앙증맞다.
연분홍 봄이 너무 아름다운 '(분홍)새끼노루귀'
바람마저도 멋진 풍경이 되는 봄에만 나는 향기
꽃샘추위와 거센 바람을 이겨내며 용기를 내준 봄꽃들은 감동을 준다.
봄이 가장 먼저 오고 있음을 알려주었던
하얀 치맛자락을 살랑거리던 가냘프고 여린 모습의 꽃 아기씨 '변산바람꽃'은
하얀 그리움으로 봄바람 타고 떠날 채비를 서두른다.
삼나무가 울창한 '삼울길'
하늘을 찌를 듯한 50여 년생의 통 바람이 부는 수직의 정원에는
강풍으로 쓰러진 나무로 만든 장승들이 크게 웃어주고
울창한 쑥쑥 자라 쑥대낭(삼나무) 길을 걷는 동안
초록으로 가득한 은은한 숲 향기에 몸과 마음까지 맑아진다.
자연 속에서 즐길 수 있는 특별한 매력을 가지면서
주변 풍광이 숨 막히게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거친오름'은
숲길 관찰로와 상시관찰원이 조성되어 있는 '제주노루생태관찰원'과
숲과 마음이 하나 되는 곳인 '제주절물자연휴양림'을 통해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이 글은 제주투데이 '길에서 만난 들꽃이야기'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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