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정현의 옛터를 찾아...(2026.6.17. 수)
예고된 비소식...
차창 유리를 때리는 비와 다르게
달리는 차창 밖으로 아름다운 무지개가 나무 사이로 떠올랐다.

크고 조용한 대정골~
일찍 시작된 비날씨지만 우산을 쓰고
안성리 농로길 따라 '수월이 못'을 시작으로 '대정향교'까지
대정현의 옛터를 찾아 대정고을의 역사와 풍광을 담으며 둘레 길을 걸어본다.


비 내리는 마을 농로길에는
초여름에서 무더운 여름 중순까지 피는
잎새마다 몽실몽실 탐스럽게 핀 수국이 여백을 채워준다.







길에서 만날 수 있었던 생소한 모습의 '아티초크'
국화과 여러해살이 식물로 지중해 연안이 원산지로
고대 이집트 문헌에도 식용 기록이 남아 있는 오랜 역사를 가진 채소라고 한다.
야생 엉겅퀴로 출발했으나 개량을 거쳐 보급되었다.
주로 꽃이 피기 전의 꽃봉오리를 수확해 먹으며 달짝지근한 맛과 풀향이 어우러진
독특한 풍미가 있고 섬유질이 많아 아삭한 식감을 준다.
유럽 시장에서는 5~8월 사이에 절정으로 소비되는 식물이다.


밭담 안으로 비에 젖은 설익은 초록의 '풋귤'
해가 떨어지고 어둑어둑해지면 피는 달맞이꽃과 달리
낮에 피는 '낮달맞이꽃'이 빗방울이 무거운지 고개를 떨군 채 맞아준다.



안성리 마을 북쪽에 위치한 수월이 못은
구전에 의하면 관기(기생) 수월이가 살던 집터로 수월이가 죽은 뒤
주민들의 분노로 집터를 파 버렸고 그곳에 물이 고여
못을 이루어 '수월이 못'이라 부른다.
조선시대 후기에 만든 대정골에서 가장 큰 인공연못으로
큰 연못과 2개의 작은 연못으로 되어 있고
작은 연못은 식수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마름으로 가득 찼던 수월이 못에는 녹색의 아름다운 '연꽃'이 못을 가득 채우고 있다.







역사가 숨 쉬는 대정골
인성리, 안성리, 보성리의 세부락으로 이루어진 대정고을은
왼쪽 단산과 산방산, 오른쪽에 모슬봉, 뒤에는 넓게오름이 외곽을 이루고
지형은 해발 100m 이하의 용암평원으로 되어 있다.
대정이라는 지명의 유래는 대정현을 설치할 당시 대정고을 서쪽에 '한괴'라는 이름에서
'한'은 크다, 많다의 뜻이므로 '대(大)'자로 하고
'괴'는 조용하고 정숙한 곳이므로 '정(靜)'을 사용하여 '대정'이라 정했다고 한다.
조선 태종 18년 현감 유신이 백성을 보호하기 위하여
대정성을 축성한 후 주민들이 성을 중심으로 부락이 형성되었으며
동쪽마을을 동성리, 서쪽마을을 서성리라 하였다.
현재 안성리, 인성리, 보성리, 신평리, 구억리 5개 마을을 합쳐서
대정고을이라 불린다.


돌하르방은 우석목, 무석목, 벅수머리 등으로 불려지며
제주의 삼읍성(三邑城)인 제주성·정의성·대정성의
성문(동, 서, 남문) 입구에 세워져 있던 석상으로
현재는 제주대학교, 시청, 삼성혈, 관덕정 등 제주시내 21기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 12기
대정읍의 인성, 안성, 보성 12기 등 도합 45기가 있다.
주민들의 안전과 건강을 지켜주며 기원하는 수호신적 · 주술 종교적 의미와
도읍지의 위치를 정확히 알려주는 경계 금표적 기능을 한다.
대정성의 돌하르방은 대정성의 동문 입구 좌우에 각각 2기씩 세워져
성안으로 출입하는 사람들을 감시하는 등 성을 지키는 수문장으로서의 역할을 하였다.
2018년 10월, 보성초등학교에 자리하고 있던 돌하르방 3기와
기존 동문지에 자리하고 있던 1기 등 총 4기를
현 위치(대정성의 동문)로 이설, 정비하였다.

울타리가 된 탱자나무
김정희가 살던 집으로 길을 내어준다.



대정성지는 조선 태종 18년에 대정현감 유신이 왜구의 침입을 막고
백성들을 보호하기 위해 축성하였다.
성벽의 둘레는 약 1,614m이고, 높이는 약 5.1m이며
보성, 인성, 안성 일대에 걸쳐 있다.
남문 세 개의 성문이 세워졌는데,
문 위에는 누각이 문 앞에는 돌하르방이 있었다.
이곳을 중심으로 관아와 창고 등이 있었고, 십여 곳에 봉수대를 설치해 왜적의 침입을 알렸다.
산과 계곡을 끼고 있는 일반적인 읍성과 달리
이 성은 집과 밭들 사이에 자리 잡고 있다.
제주에서 흔히 보이는 현무암으로 쌓아 올린 성벽에서 당시의 축성법을 엿볼 수 있다.


이 못은 두레박으로 떠올리는 물이라는 데서
'두레물'이라 불리던 것이 후에 한자표기에 의해서 '거수정'이라 호칭하며
이 물은 옛날 대정골의 유일한 못으로
유력한 명관이 추대되면 물이 말랐다가도 용출하고
만약에 그렇지 못한 이가 추대되면
용출되던 물이라도 금세 말라붙어 버렸다고 한다.




동헌터는 대정현성의 동헌이 있던 자리라 해서 불려진 이름으로
지금의 보성초등학교에 있다.

돌하르방은 제주의 삼읍성(三邑城)인
제주성·정의성·대정성의 성문(동, 서, 남문) 입구에 세워져 있던 석상이다.
해당 돌하르방은 대정성의 서문 입구 좌우에 각각 2기씩 세워져
성안으로 출입하는 사람들을 감시하는 등 성을 지키는 수문장으로서의 역할을 하였다.
2018년 10월, 서문 밖에 자리하고 있던 돌하르방 3기와
기존 서문지에 자리하고 있던 1기 등 총 4기를
대정성의 서문인 현 위치로 이설, 정비하였다.


석상의 형태는 대체로 벙거리형 모자, 부리부리한 왕방울 눈,
큼직 막한 주먹코, 꼭 다문 입, 배 위아래로 얹은 두 손의 모습을 하고 있다.
석상은 성문 앞에 세워지면서 주민들이 안전과 건강을 지켜주며
육지의 장승과 같은 역할을 맡았을 것으로 보고 있다.


남문앞물(남문지)은 대정성지 남문 앞에 위치한 연못으로
원래의 못은 우마급수장으로 활용하였던 못으로
외부의 침략을 막고 백성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축성작업을 하던 중
모슬봉의 화기가 비치니 남문 앞에 연못을 파서 화기를 누르면
백성들이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하여 설치된 못으로
지금까지도 마을 주민들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연못이다.







'날개를 편 박쥐를 닮은 바굼지오름'
단산(바굼지오름)은 대정향교의 뒷동산으로
보는 방향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이 매력적이다.
옛사람들은 마치 박쥐가 날개를 펼친 모습이라 하여 '바굼지오름'이라 불렀다.
부드러운 능선의 여느 오름과 달리 세 봉우리로 되어있는 단산은
바위 봉우리가 수직의 벼랑을 이루는 뾰족하고, 거칠고 험한 모습을 하고 있다.

방사탑은 마을 공동체의 무사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지역 주민이 공동으로 돌을 쌓아 세운 소중한 향토유산이다.
지역에 따라 '방시탑, 방사탑, 거욱대, 거왁'
등으로 부르며 인성마을에는 4기의 방사탑이 세워져 있다.
(도내에는 30 여기의 방사탑이 있다.)

인성리 알벵디 농로길에 있는 못

여름비에 흠뻑 젖은 기장...군데군데 피가 섞여있는 것이 보인다.

새미물은 옛날 주변 마을에서 물을 길어 먹었던 곳으로
'세미물 또는 돌세미(石泉)'라 불리기도 하고
추사 김정희가 이곳의 물을 길러다가 차를 즐겨 마셨다고 한다.
배움을 찾아가는 순례지 '대정향교'
향교는 공자를 비롯한 여러 성현께 제사를 지내며,
지방 백성의 교육과 교화를 목적으로 세운 교육기관이다.
향교는 성균관과 더불어 오늘날의 중등학교에 해당하는 향궁으로
조선왕조 때 현에 있는 공자의 문묘와 거기에 부속된 중등교육기관인 관립학교로서
대정향교는 조선조 태종 16년(1416년)에 처음 설립되었다.

대정향교는 1420년(세종 2)에 대정성 북쪽에 처음 지어진 후,
여러 차례 옮겨지다 1653년(효종 4) 현 위치에 옮겨 지어졌다.
명륜당이 북향 하여 자리 잡고 그 북쪽에는 대성전으로 가는 삼문(三門)이 있으며,
이 문을 들어서면 대성전이 남쪽을 향하여 서 있다.

경내에는 대성전, 명륜당, 동재, 서재, 의전당,
내삼문, 전향문, 퇴출문, 대성문, 동정문, 전사청 등이 있다.
'의문당(疑問堂)'은 동재에 걸려 있는 현판으로
추사 김정희가 나무판에 새긴 현판이다.

대정고을의 크고 작은 습지와
울창한 소나무들이 둘러싸인 자연이 어우러진 대정향교
길은 여기에서 끝나지만 마음의 휴식을 찾아 걸었던 대정고을이 따뜻하게 느껴진다.
주춤하던 비는 갑자기 퍼부어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