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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길따라

잃어버린 마을 곤을동을 찾아서~

by 고니62 2014. 11. 17.

잃어버린 마을 곤을동을 찾아서~(2014.11.13. 목)

 

제주시 중심의 동쪽에 위치한 화북은

2개의 법정동(화북1, 2동)과

 6개의 자연마을(동, 중, 서부락, 거로, 황사평, 동화)로

어업과 농업, 공업이 발달한 마을입니다.

유적지가 많고 예부터 화북포구는 연육교통의 요충지로

해신사에서는 목사가 직접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는 제를 지내기도 합니다.

 

자연마을이었던 곤을동은 군인들에 의해 초토화되면서 '잃어버린 마을'로

아픈 사연을 간직한 채 흔적만이 남아있어

제주만이 겪었던 4.3의 아픔을 갖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탐방경로

별도봉 동측 등반로~곤을동 근린공원~안드렁물 주상절리대~곤을동~비석거리~

환해장성~금산마을~화북포구~김씨와가~청풍대~화북진성~해신사~별도연대~환해장성~

괸물~삼양포구~둠벵이교~삼양검은모래해수욕장~삼화포구

 

별도봉은 예전에는 바닷가쪽에 낭떠러지가 있는데 연유하여 '배리오름'이라 불려졌으나

현재는 화북동의 엣마을명을 따라 별도(別刀)을 따라 별도봉이라 부른다.

별도봉 동쪽 등반로 따라 걸면서

화북은 어떤 아름다움과 슬픈 사연을 간직하고 있는지 들어가볼까요~

 

부두의 시원한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옵니다.

 

 

주상절리대

제주시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주상절리대의 모습에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안드렁물

이 곳 '안드렁물'은 곤을동(제주 4.3 잃어버린 마을)의

안곤을 주민들이 이용했던 식수터로

주민들은 3단으로 나눠진 이 물을 먹는물과 허드렛물, 빨래물로 이용하였는데,

아무리 가물어도 물이 마르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현재는 식수로 이용할 수가 없습니다.

 

 

 

 

 

'잃어버린 마을' 표

해안마을 70여 호로 이루어졌던 곤을동은

1949년 1월 4일 군인들에 의해 초토화되어 복구되지 못한 채 '잃어버린 마을'로

슬픈 사연을 간직한채 보는 이의 마음을 씁쓸하게 만든다.

 

 

 

 

화북 비석거리(도기념물 제30호)

역사가 오랜 마을마다 중심지에 마을과 관련된 사람들의 치적을 기념하는 비가 세워져있다.

이러한 거리를 비석거리라 부른다.

화북은 제주성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포구로

제주목사나 판관 등 지방관리들이 이 곳을 거쳐 부임 또는 이임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비석거리에는 이들의 치적을 기리는 13기의 비석이 남아있다.

 

 

 

끊어진 하천줄기

저 너머로 망자의 한이 서린 슬픈 모습을 한 곤을동 마을이 눈에 들어옵니다.

 

 

곤흘동 환해장성(밖곤을)

환해장성의 성벽 길이는 약 140m이고, 성벽은 바깥쪽으로 배가 부른 형태를 하고 있다.

성 위로는 총이나 활을 쏠 수 있도록 구멍이 뚫린 여장이 있다.

 

금산마을 해안도로

 

 

화북포구

 

큰짓물

 

비석물

 

 

제주의 와가 김석윤 가옥

일제강점기(1913년) 지어진 가옥으로

일자형인 안거리(안채)와 밖거리(바깥채), 모커리(별채), 먼문간과 이문간(대문이 달린 채),

쇠막, 통시로 구성되어 있다.

이 가옥은 와가와 초가로 구성되어 있다.

바람에 무너짐을 방지하고, 안과 밖이 폐쇄적이면서도 개방성을 유지하는 구조로

제주 건축의 아름다움을 엿볼 수 있다. 

 

청풍대(淸風臺)

화북동 중부락에 위치한 곳으로 옛 제주목의 관문으로 목사외에 지방관원들이 뭍으로 드나들때

잠시 쉬어 가는 곳이다.

 

숙종4년 최관목사가 진영을 설치하여 둘레에 성을 쌓고 조방장을 두어 지켰던 곳이다.

현재는 성터로 남아있다.

 

 

해신사(도기념물 제22호)

해상을 왕래할 배들의 안전을 기원하기 위하여

 화북포 해안에 사당을 짓고 매년 정월 보름 해신제를 지낸다.

1849년에 장인식목사가 '해신지위'라고 비석에 새겼다.

 

별도 올레 쉼터

 

환해장성(環海長城 도기념물 제49호)

해안선 300여리(약120km)에 쌓여진 석성이다.

제주지역 해안가에 고려후기부터 조선후기 사이에 만들어진 방어유적이다.

 

별도연대(도기념물 제23-9호)

연대는 횃불과 연기를 이용하여 정치, 군사적으로 급한 소식을 전하던

옛 군사통신 시설이다.

연대는 주로 구릉이나 해변지역에 설치되었고, 봉수대는 산 정상에 설치되어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횃불을 피워 신호를 보냈다.

제주도의 봉수는 25곳, 연대는 38곳이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새각시물

옛 사람이 여자의 몸매를 닮았다고 하여 '새각시물'이라 불리워진다.

마시고, 몸 감고, 빨래하던 곳으로

해안도로 개설로 길 속에 묻힐뻔 했으나 보조금 받아 복원하였다.

 

 

삼양검은모래 해수욕장

해수욕장내에는 돈물(감수탕)이 있다.

 

해안도로

 

 

 

삼화포구(앞개성창)

 

 

앞갯물(여탕)

 

 

앞갯물(남탕)

 

 

[담쟁이]

 

[댕댕이덩굴]

 

[광대나물]

 

[송악]

 

늘 좋던 날씨가 수능보는 날에는 강추위로 어깨를 자연스레 움츠려들게 만듭니다.

바닷바람과 맞서며 걸었던 화북의 숨겨놓았던 문화, 유적들을 펼쳐보며,

아픈 사연을 간직한 곤을동의 모습을 가슴에 새깁니다.

 아름다운 길에 담겨진 화북과 삼양의 마을길(해안길)은

오늘만큼은 커다란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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